최고경영진의 변혁과 기업문화(Leadership/하버드비즈니스리뷰 6월호)

 

지금까지 우리는 좋은 기업을 흔히 프로야구팀에 비유해 왔다. 투수, 포수, 1번 타자, 4번 타자 등 포지션별로 유능한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여 우승을 하듯이, 기능적으로 분화된 조직별 책임과 성과를 강조해 왔다. 따라서 각 조직을 맡고 있는 최고경영자들 역시 다른 업무에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자기 맡은 일에만 충실하면 되었다. 그런 사고 속에서 경영을 하다 보니 심지어 도를 지나쳐 자기 책임이 아니라면 회사가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입 다물고, 남의 부서 일에 무관심하며, 그것을 남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리고 타 조직과의 협력은 사적인 친분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부작용까지 생겼다.

 

수익모델이 안정적이고 가치창출의 원천이 모든 임직원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산업이라면 과거형 조직도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기업은 컨버전스(융합) 바람을 타고 기술이나 경영환경이 급속하게 변하고, 고객의 요구도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경쟁 환경에 속해 있다. 특히 IT기업은 타 기업에 비해 그 정도가 더 심각하여 조직 간의 철저한 업무분화로는 미래를 보장받기 어렵다. 조직을 맡고 있는 임원 모두가 회사의 전략이나 비전을 자기 업무로 인식하고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 즉 미래형 조직에서 요구되는 경영층 간의 새로운 변혁(New Deal)은 집단문제 인식을 기반으로 한 공동책임을 강조하여 상호의존을 요구한다.

 

이브 도즈(Yves L. Doz) 프랑스 인시아드대 석좌교수와 미코 코소넨(Mikko Kosonen) 노키아 특별고문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6월호에 SAP, HP, IBM, 노키아 등 전 세계 12개 대기업의 최고경영진 리더십을 3년간 분석한 결과, 임원들이 부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회사의 공동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고 상호의존(Interdependent)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ers)로 변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방안을 제시했다.

 

미래형 조직으로 변신에 성공한 회사들은 최상층에서부터 조직변화를 창안해 공동 목표와 비전을 하위 직원들에게까지 뿌리내려 서로 존중하고 상호 의존하는 기업문화로까지 발전하였다. 뉴딜에 성공한 이들 기업이 취한 접근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가치사슬 또는 기능별로 초점을 맞추어라

 

SAP는 2005년에 기존 사업별 부문 대표직 대신, 가치사슬의 각 단계마다 임원에게 책임을 맡기는 조직 대통합을 단행했다. 최고경영층은 회사의 전반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는데 참여해야 했고, 임원들은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부서 소속에 관계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각 사업부문들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게 되었다.

시스코(Cisco)도 R&D부문 대표를 모든 제조와 라인공정, 생산기술에 대한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하고, 영업과 마케팅부문 대표는 지역 중심의 업무를, 소비자보호 부문 대표는 유지관리와 서비스 업무를 함께 수행토록 하는 등 기능 중심으로 최고경영층을 재배치해서 변혁에 성공했다.

 

둘째, 비즈니스 그룹과 자원공유

 

시스코나 SAP보다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가 덜 집중된 기업은 기능별 부문을 바탕으로 조직 매트릭스(matrix)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노키아는 2004년 조직개편에서 수직적으로 이동전화, 멀티미디어, 기업솔루션, 네트워크 등 4개의 비즈니스 그룹을 만들고, 여기에 소비자시장운영, 기술플랫폼 등 2개의 수평그룹을 만들어 수직그룹들을 지원하게 하였다. 수평그룹은 수직그룹을 지원하는 동시에, 이들의 업무를 조사해 개선하는 책임도 맡았다. 그리하여 소비자운영그룹은 전사적인 요금관리체계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셋째, 공동의 비즈니스 모델 수립

 

사업 분야가 넓고 다양한 회사는 공동의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해야 한다. 이지그룹(easyGroup)은 비행기와 크루즈선박, 호텔, 렌털 등 다양한 사업 부문을 가진 복합기업이지만, 단일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어 인터넷과 통신수단을 통해 다양한 가격전략을 취하고, 일드(yield) 매니지먼트(사전 수요예측으로 적정가격 수준을 결정해 매출을 극대화하는 전략)를 적용해 이익을 최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부문별 고유한 사업 특성을 가볍게 여긴다든지, 전문적 지식을 홀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회사의 분열을 자초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3가지 외에도 임원들에게 전사적인 임무와 사업모델에 대한 활동과 사업의 중요도에 따라 책임과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조직의 자율성과 조직 간의 균형을 유지토록 해야 한다.

 

성공적인 뉴딜을 위해서는 통합 모델을 적용하는 것뿐 아니라 올바른 프로세스와 관행을 정착시켜 최고경영층과 조직이 시간만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통합 모델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뉴딜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원회의에서 회사의 전략적 이슈를 공유하라

 

각 사업 부문의 중요한 이슈를 취합해 임원회의에서 이를 통해 현안을 공유하고 대응해야 한다. 노키아의 통합전략부문 대표인 자르코 사이라넨(Jarkko Sairanen)은 “회사 전반의 안건을 공유함으로써 노키아의 임원들은 공동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설명했고, IBM의 임원회의는 다양한 사업영역을 넘나드는 회사의 정책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둘째, 격식을 차리지 않는 대화를 유지하라

 

캐논 회장 미타라이 후지오는 매일 아침 8시부터 1시간 동안 회의를 여는데, 특별한 안건은 없지만 참석자들은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업무에 대한 잠재적인 결정을 내린다. 캐논 연합전략개발부문 대표를 맞고 있는 와타나베 구니오는 “임원들이 빠지고 싶어하지 않는 회의다.”라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는 공식적인 회의도 허물없는 분위기로 유도하게 된다.

 

셋째, 돌이켜 볼 시간을 가져라

 

최고경영층은 현재 진행 중인 사안과 결정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이것은 자칫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기 보다는 지시 일변도의 분위기로 바뀌어 버릴 수가 있다. SAP회장 헤닝 카거만(Henning Kagermann)은 분기마다 한 번씩 임원들을 회사 밖으로 불러내 회의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 임원들은 회사에 목표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을 통하여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각자 헌신, 동기, 야망에 대해 상호 이해를 증진시킨다.

 

넷째, 참신한 시각을 유지하라

 

사람이란 서로 이해와 신뢰를 쌓아나가는 존재인 동시에, 텃세를 부리고 낡은 아이디어와 현실에 안주하여 매몰되는 존재일 수도 있다. SAP는 지난 6년 동안 외부인에게 간부 자리를 개방하고 있으며, 연합전략그룹이라는 내부 컨설팅팀을 두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결재 사안들을 재점검하게 하고 있다. 컨설팅팀은 임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냉정하고 엄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CEO에게 직보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다섯째, CEO를 종속적인 위치에 놓아라

 

CEO가 막강할 경우 임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CEO 의견을 따라가기만 하는 위험이 있다. IBM CEO 샘 팔미사노(Sam Palmisano)는 임원회의에서 주로 대화를 경청하는 입장이었고, 결정의 순간에도 먼저 나서기를 주저하기도 하였다. 이는 토론을 억누르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아이디어를 끌어내려는 의도였다. 임원들이 더 많은 권한을 갖는 데 익숙해지자 팔미사노는 매일 진행되는 이슈에서 한 발 물러나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섯째, 투명한 평가 제도를 확립하라

 

미래형 조직은 상호 의존적인 특징으로 인해 조직이 자칫 정치게임에 몰두함으로써 조직에 회의론을 불러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층이 상호 협력을 통하여 회사에 얼마나 공헌하는지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투명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회사는 2006년 초부터 Innovation 활동을 계속해 왔으며, 조직을 노키아 같이 영업부서와 지원부서를 수직, 수평으로 엮은 매트릭스 조직으로 개편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평가시스템을 도입하였으며, 매일 아침마다 임원들이 모여 회사 이슈를 서로 부담 없이 이야기하고 향후 사업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도 하는 CGO미팅도 계속하고 있다. 또한 각 부서도 자기 영역에서 기반을 닦아가며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스스럼없이 각자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터놓고 토론하는 모습이 부족하다. 특히 부서장들의 공동체 의식은 앞서 예를 든 뉴딜에 성공한 기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본다. 우리의 앞날을 방해하는 적은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고 우리 스스로인 것을 알고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뉴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겉모습만이 아닌 내적인 변혁이 우리에게는 필요하고 이러한 마인드가 우리의 기업문화로 자리잡아야 한다.

- 조선일보 토일섹션 Weekly BIZ 제26891호에서 -

2008/03/05 14:31 2008/03/0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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