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녹동항은 규모는 작지만 고흥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과거 녹동항은 남해연안 어업 전진기지로 수산물이 풍부해 풍요로움을 누렸다. 여기에 더해 녹동항에서 600m 떨어진 '작지만 아름다운 섬' 소록도는 고흥의 대표적 관광지로 일반인의 발길이 이어져 녹동항 주변 상권 활성화를 가져왔다.

녹동항과 지척인 소록도는 섬 전체가 한센병 환자를 위한 병원지역으로 지정돼 과거엔 외부인들의 출입이 통제됐다. 그러나 1988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아름다운 풍광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관광객은 녹동항을 통해 소록도를 찾게 됐다.

항구 바로 앞에 눈에 잡힐 듯 떠있는 소록도와 사시사철 풍부한 어패류가 생산된 녹동항이 고흥을 대표하는 '금싸라기 땅'이 된 이유다.

어획고가 꾸준히 늘면서 수산물 가공공장을 비롯한 어망 등 어구 판매점, 얼음공장 등 연관업체가 연이어 들어섰다. 소록도 관광객을 겨냥한 음식점, 숙박업소도 호황을 누렸다.

항구 주변 상권이 활기를 띠면서 인구도 꾸준히 늘었다. 녹동항이 포함된 고흥군 도양읍의 인구 수가 군청 등 행정기관이 밀집된 고흥읍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녹동항은 그러나 여느 항ㆍ포구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이후 어획량이 급감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곳에서 주로 잡히는 대표 어종은 광어, 우럭, 돔, 낙지, 갯장어 등이었지만 먼 바다의 싹쓸이 조업 및 어선 감척사업 등의 여파로 최고의 활황을 누렸던 때와 비교할 땐 어획고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고흥군 수협 위판액은 2007년 540억원에서 지난해 610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는 활어 등의 어획고 증가가 아닌 물김 작황이 좋았기 때문이다.

고흥군 수협 관계자는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던 위판액이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가장 큰 원인은 양식 규모가 확대되면서 패류 생산이 늘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어획량이 들쭉날쭉한 고기만 잡아선 생계유지가 힘들다고 판단한 어민들이 양식장에 눈을 돌리면서 소득 창출에 나섰고,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외지인들의 소록도 방문 증가에 따른 관광 수입은 어패류 위판과 함께 녹동항 경제력을 지탱하는 한 축이다. 소록도에는 70세 이상인 주민 620여 명과 의료진 180여 명이 살고 있다. 하지만 소록도에는 관광객이 머물고 쉴 수 있는 시설이 전무한 상태. 녹동항이 소록도의 배후 관광단지 역할을 맡게 된 이유다.

특히 지난 3월 도양읍 녹동항과 소록도를 잇는 총 연장 3460m의 소록대교 개통으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섬 주민들의 바깥 나들이가 원활해졌고, 관광객이 늘면서 항구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이같은 외적인 변화가 녹동항 주변 상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진 않았다. 소록대교 개통으로 자동차를 통한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관광객들이 녹동항에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과거 소록도를 왕래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선박일 때는 선착장 주변 횟집이나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많았지만 지금은 소록도만 둘러보고 곧바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녹동항 주변 상인들은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소록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크게 늘었지만 실제 녹동항 주변 식당이나 술집, 여관 등을 찾는 이는 오히려 줄었다"며 "녹동항 상권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대표 항구인 녹동항의 침체는 고흥 전체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항구의 경제력이 흔들리면서 군청 소재지인 고흥읍의 상권도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군청과 경찰서, 터미널 등이 밀집돼 유동인구가 끊이지 않았던 고흥군청 앞 주변 상가들이 영업 부진을 이유로 휴ㆍ폐업을 결정하면서 원도심 공동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고흥군이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행정타운 이전 등의 계획을 마련했지만 재원 마련의 어려움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흥군은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녹동항 주변 환경디자인 개선 및 야간경관 조성에 나서고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환경디자인과 야간경관 조명으로 녹동항이 첨단 자연, 문화와 전통이 만나는 고품격 미항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와함께 군은 고흥군 도양읍 일원 91만평(일반 산업단지 64만평, 배후단지 27만평)에 '고흥 조선타운'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중형 조선소 및 연관 기자재 업체 집적화 단지를 조성해 전통적 농어촌 지역인 고흥군이 21세기 선진 도ㆍ농 복합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만든다는 것이 군의 구상이다.

조선타운에는 조선산업 시설뿐만 아니라 교육시설과 주거시설, 병ㆍ의원 등 복지시설, 기타 각종 문화체육시설 등을 갖춘 쾌적한 배후단지가 동시에 조성돼 도양읍을 전남 동ㆍ남부권 조선산업의 신 메카로 자리잡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여파로 관련 업체들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역민의 기대가 충족될 지는 미지수다.

박성원 기자 swpark@jnilbo.com
고흥=류준석 기자 jsryu@jnilbo.com


"한때 24만 군민이 이젠 8만명도 안돼"
■ 정순열 고흥군번영회장

과거 24만명에 달했던 고흥 인구가 최근엔 8만명선이 붕괴되는 등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인구 유입과 상권 회복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지난 19일 고흥읍에서 정순열 고흥군번영회장을 만났다. 정 회장은 최근 목포~광양간 고속도로 구간의 고흥 나들목(IC) 설치를 위한 범군민추진위원회(범추위) 공동대표를 맡아 타당성 용역을 이끌어내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고흥을 지나는 고속도로인데 정작 고흥으로 드나들 나들목이 없다는 건 말도 안된다'는 주민들의 반발과 갈수록 쇠퇴해가는 고흥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고흥 나들목 설치는 필수라는 생각에서 추진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시행자인 한국도로공사가 고흥 나들목 예정지였던 동강면 한천 부근엔 양쪽 터널 교량이 800m에 불과해 설치가 불가능한데다 고흥지역 진ㆍ출입을 위한 벌교읍 칠동에 벌교 나들목이 설치돼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를 납득할 수 없었던 정 회장 등 범추위는 고흥군을 비롯해 전남도 등에 고흥 나들목 설치를 지속적으로 건의하는 한편 지역 정치인과 중앙부처를 직접 방문해 필요성을 역설했다. 범추위의 끈질긴 노력에 결국 한국도로공사는 고흥 나들목 건설을 위한 타당성 용역을 의뢰했다.

정 회장은 "고흥 발전을 위해 모든 주민들이 합심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라며 애써 겸손해했지만 그의 남다른 노력은 지역 내에 널리 퍼져있는 느낌이다.

고흥군번영회장으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고흥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과거 해남과 함께 전남 동ㆍ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중심지였던 고흥이 쇠락한 원인은 자연적인 인구 감소도 한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 지역 발전을 위한 노력과 대안 모색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며 "이제라도 고흥읍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 활성화를 비롯해 다각적인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이어 "고흥군이 고흥읍에 군 청사 및 대규모 주거단지 등이 들어서는 신시가지를 조성하려는 것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 "다만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기존 청사 활용방안과 기존 상가들의 피해 최소화를 위한 노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나로우주센터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고흥 항공우주클러스터 조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했다.

로켓 발사 등에 따른 주변 환경파괴와 소음 피해 등에 대한 정확한 조사없이 우주센터 부지가 선정된데다 지역민에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고흥지역 활성화 방안으로는 교육여건 개선 등을 인구 유입을 첫 손에 꼽았다.

그는 "고흥지역은 청ㆍ장년층 인구 유출 및 급속한 고령화, 생산기반 미비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진단한 뒤 "고흥읍을 중심으로 한 기존 시가지 정비와 함께 우수 학교 설립 등 교육기반 구축을 통해 살고 싶은 지역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2009/09/30 19:18 2009/09/3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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