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대비해서 말하지만, 체계의 규모로 봤을 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같은 급으로 놓기는 어렵습니다. 공산주의는 정치, 경제 이론을 중심으로 예술, 도덕 이론을 포함하고, 종교적인 성격까지 갖추었기에 근대에 들어 인간이 만들어낸 이념 중에선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이론이 중심이고, 경제를 넘어선 부분에 대해선 별로 제공할 이론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는 예술가가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정교한 공산주의 예술이론을 개발했는데, 자본주의는 예술가, 특히 순수 예술가에게 이러한 지침을 제공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에 살던 예술가들은 공산주의의 표현으로 예술을 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예술가들은 자본주의와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 활동을 벌이기 마련이죠.

정치의 영역을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공산주의는 정치와 경제를 긴밀한 관계로 보고, 따라서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일관된 이념을 제시합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노동자가 경제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당이 정치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그에 비해 자본주의는 정치의 영역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만약 자본주의를 정치에 적용한다면 자본가가 경제의 중심이기 때문에 자본가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본주의를 따르는 국가는 대부분 정치권력을 일반 국민에게 돌리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민주주의 체제는 "경제권력은 자본가가, 정치권력은 일반 국민이 갖는" 기묘한 구조라고 할 수 있죠.

자본주의가 이처럼 경제의 영역만 다루는 규모가 작은 이념이기에, 자본주의를 사회에 받아들이려면 자본주의 만으로는 안 되고 이를 보충하는 다른 이념이 필요합니다. 유럽은 기독교 전통과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보충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자면 노동자에게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월급을 주면 됩니다. 즉,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이 많다면 노동의 공급이 많은 셈이니 노동의 가격이 내려가고, 따라서 매우 적은 월급만 주고 일을 시켜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농촌이 몰락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이 늘면서 노동시장은 포화 상태가 되었고, 자본가들은 이들에게 생계를 유지하는데도 부족한 월급만 주고 험한 일을 시켰습니다. 수입이 적어 생계가 어려워진 노동자들은 아이들을 노동 시장으로 내몰았고, 이로 말미암아 어른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알려지면서 때문에 "존엄한 인간을 이렇게 대해선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정치인에게 압력으로 작용해 노동환경 개선, 아동 노동 금지, 최저 임금제 등의 결실을 보았습니다. 만약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보는 전통이 없었다면, 그리고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정치권력으로 바꾸어 놓을 정치 제도가 없었다면 지금도 유럽에선 기름 범벅이 된 꼬마 아이들이 공장에서 큰 기계 틈으로 다니며 위험한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는 윤리의 영역에 대해 제공할 이론이 없지만, 20세기 들어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윤리학을 건설하는 야심 찬 작업을 추진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인 아인 랜드(Ayn Rand)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녀는 아틀라스(Atlas Shrugged) 등의 소설을 썼을 뿐 아니라 객관주의(Objectivism)라는 철학을 주창하기도 했습니다. 랜드는 자본주의- 알려지지 않은 이상(Capitalism: The Unknown Ideal)을 쓴 데서 알 수 있듯, 자본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우파였습니다. 그가 쓴 이기심이라는 덕목(Virtue of Selfishness)은 그가 생각하는 윤리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랜드는 각 사람은 행복해지려고 태어났고, 따라서 개인의 행복 추구는 최고선이기에,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놓는 태도야말로 미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남에 대한 배려나 불쌍한 사람에 대한 동정 등은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악덕이고, 배척해야 마땅하죠. 그런데 랜드가 옹호하는 태도는 바로 "우리가 낸 세금으로 왜 가난한 자를 돕느냐?"고 항변하는 부자들의 태도와 일치합니다. 즉, 부자에 대한 감세 정책은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랜드의 윤리관을 따르자면 대단히 도덕적인 정책입니다. 그에 비해 돈 많은 사람에게 세금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부는 랜드에 따르자면 대단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 있죠.

"이기심이 곧 덕목이다."는 아인 랜드의 주장이 단지 한 궤변가의 헛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인 랜드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그의 말을 쉽게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지금도 영어권 국가에서는 랜드가 쓴 Fountainhead나 Atlas Shrugged가 많이 팔립니다. 이러한 책들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랜드의 사상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랜드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죠. 또한, FRB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이 랜드가 이끌던 Objectivism 그룹에서 열심히 활동했고,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그는 랜드의 "자본주의- 알려지지 않은 이상"에 한 챕터를 쓰기도 했죠), 랜드의 사상이 그린스펀 등의 고위 관료를 통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추측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다른 이념이나 종교에서 윤리관을 빌려와야 하는데, 다른 이념이나 종교가 대부분 쇠퇴한 오늘날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라는 자신 내부의 논리를 윤리로 발전시키려 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전통적인 개념의 윤리는 무너져 버리고, 사회는 오직 욕심이 가득 찬 인간들이 무한투쟁을 벌이는 전쟁터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막으려면 자본주의가 윤리의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게 제한해야 합니다. 즉, 자본주의에 대한 견제가 필요한 것이죠.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이기심을 덕목으로 치켜세운다면 진정한 윤리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2009/08/01 09:57 2009/08/0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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